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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진화하면 인간은 도태된다? — 알파고에서 신진서까지
· Ascendy Engineering
TL;DR
- 내가 개발자가 된 계기는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다. 그 경기를 보며 “저런 걸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의 분위기는 하나였다 — “이제 바둑에서 인간은 AI를 못 이긴다.”
- 그런데 이번 주, 정반대의 장면이 나왔다. 세계 1위 신진서가 현존 최강 바둑 AI 카타고를 상대로 2점 접바둑을 이겼다. 카타고는 알파고가 연 계보를 잇는, 10년간 훨씬 더 강해진 엔진이다.
- 나는 이걸 “인간이 AI를 따라잡았다”로 읽지 않는다. AI라는 렌즈로 바둑을 대하는 시각이 바뀌었고, 그 바뀐 시각을 따라 인간의 바둑이 진화한 것이다.
- 그리고 개발자도 똑같다고 본다 — AI는 진화한다. 인간도 진화한다. 단, 같은 실력을 지켜서가 아니라 갈고닦는 자리를 옮겨서.
이 글에 대하여. 인터뷰로 끌어낸 1인칭 글이다. “인간도 진화한다”는 내 베팅에 가깝다. Go 관련 사실은 web으로 확인했고(신진서의 승부는 1승 1패였다는 점, 강함 비교의 추정 부분은 본문에 밝혀 둔다), 같은 결의 이봐, 해봤어?, 설계한 게 아니라 위임했다와 이어진다.
내가 개발을 시작한 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다
먼저 고백부터. 나는 원래 개발자가 아니었다. 내가 이 길로 들어선 계기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었다. 그냥 보다가 “저런 걸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때 세상이 그 경기에서 읽은 메시지는 훨씬 무거웠다. 바둑은 인간 직관의 마지막 성역 같은 것이었는데, 그게 무너졌으니까. “이제 바둑에서 인간은 AI를 이길 수 없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였고, 그 뒤로 “AI가 발전하면 인간은 도태된다”는 서사가 여러 분야로 번졌다.
그런데 이번 주, 정반대의 장면이 나왔다
2026년 7월, 세계 1위 신진서 9단이 현존 최강 바둑 AI 카타고를 상대로 2점 접바둑에서 이겼다. 290수까지 가는 접전 끝에 4집 반 승.
정직하게 짚으면, 이건 완승 서사가 아니다. 이틀에 걸친 대국에서 그는 1국을 완패하고, 2국을 이겼다 — 1승 1패다. 그럼에도 이 승리가 특별한 건, 상대가 어떤 AI였느냐 때문이다. 카타고는 10년 전 이세돌을 무너뜨린 알파고가 연 계보 — 알파고 제로·알파제로 계열의 기법 — 를 잇는, 지금 존재하는 가장 강한 바둑 AI다. 알고리즘도 학습량도 그때와 비교가 안 되게 발전했다. 그 상대에게, 인간이 두 점을 깔고 이겼다.
AI가 이렇게 강해진 지금, 이 두 점은 이세돌의 그 한 판에 견줄 만큼 상징적인 승리로 읽힌다. (다만 엔진들이 훨씬 강해진 지금, “카타고에 두 점을 이긴 신진서”가 “그때의 알파고”와 어느 수준에서 만나는지는 정확히 재기 어렵다 — 그건 추정의 영역이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따라잡았다”가 아니다 — 시각이 바뀌어 인간이 진화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봐라, 결국 인간이 AI를 따라잡았다.” 나는 그 표현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따라잡기는 같은 트랙에서 뒤처진 자가 앞선 자를 쫓는 그림인데, 여기서 일어난 건 그게 아니다.
지난 10년간, 프로 기사들은 AI를 스승이자 스파링 파트너로 삼아 바둑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바둑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었다. 예전엔 정석이라 믿던 수가 뒤집히고, 인간이 두지 않던 수가 표준이 됐다. 신진서의 바둑은 과거의 인간 바둑을 잘 보존한 것이 아니다. AI라는 렌즈를 통과해 진화한, 새로운 바둑이다.
즉 인간이 AI를 쫓아가 붙은 게 아니라, AI가 열어젖힌 새 시야 안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시 진화시킨 것이다. AI가 진화하니, 인간도 진화했다.
개발자도 똑같다 — 말에서 자동차로
여기서 내 이야기로 돌아온다. 나는 이 구도가 AI 시대의 개발자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갈고닦는 능력의 자리가 바뀌었다. 예전엔 디버깅을 잘하는 법, 언어의 문법을 정확히 아는 법을 신경 썼다. 지금은 — 그런 능력 자체를 기를 생각을 잘 안 한다. 어떤 개발자는 이걸 퇴화라고 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화라고 본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자동차가 발명된 뒤에도 여전히 기마술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은 있다. 그건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세상의 무게중심은 운전 기술과 자동차 공학 쪽으로 옮겨 갔다. 말을 더 잘 타는 법이 아니라, 차를 더 잘 만들고 더 잘 모는 법이 발전한 것이다.
AI 시대의 개발자는, 말을 타고 기마술을 익히던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운전 기술을 익히는 사람으로 바뀐 것과 같다. 문법과 디버깅(기마술)에서, 방향을 정하고 결과를 판단하는 능력(운전)으로 갈고닦는 자리가 옮겨졌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사람이 F1 드라이버다 — 자동차 공학도 알고, 모는 법도 최고인 사람. 기계와 조작을 둘 다 극한까지 아는 자리다.
그럼 아무것도 몰라도 되나 — 선장은 키를 잡지 않는다
여기서 반드시 선을 하나 그어야 한다. “그럼 AI에게 다 시키고 개발자는 아무것도 몰라도 되냐?” — 그건 아니다. 진화한 개발자와, AI에 그냥 실려 가는 사람은 다르다.
그 선을 나는 이렇게 긋는다. 배에서 선장은 키를 직접 잡지 않는다. 큰 배에는 조타수도 있고 전문 항해사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장이 배를 운전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선장은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닿도록 판단을 내리고, 그 항해에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운전자와 승객을 가르는 건 손이 키를 만지느냐가 아니다. 판단을 내리고 목적지를 쥐고 있느냐다. AI에게 구현을 맡기고 방향과 판단만 쥔 개발자는, 키를 안 잡은 선장이지 실려 가는 승객이 아니다. 반대로, 아무 판단 없이 AI가 뱉는 대로 흘러가면 — 그건 아무리 결과물이 나와도 승객이다.
그래서 — “AI가 발전하면 인간은 도태된다”는 틀린 예측일 수 있다
10년 전 알파고 앞에서 우리가 느낀 건 도태의 공포였다. 그런데 신진서의 두 점은, 그 예측이 적어도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는 걸 보여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AI라는 새로운 도구, 그리고 그 도구의 —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 발전 속도에도, 인간은 또 적응하고 있다. 바둑에서 그랬듯이, 개발에서도. 도구가 진화하면 인간은 밀려나는 게 아니라, 그 도구가 열어준 새 시야 안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진화시킨다.
물론 이건 내 베팅이다. 도태를 택할지, 진화를 택할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다만 나는 — 10년 전 “인간이 졌다”고 느껴서 이 길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 이번 주의 두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가져갈 것
- AI는 진화한다. 인간도 진화한다. 단, 같은 실력을 지켜서가 아니라 갈고닦는 자리를 옮겨서.
- “따라잡았다”가 아니라 “시각이 바뀌어 진화했다”. 신진서의 바둑은 AI라는 렌즈를 통과해 진화한 새 바둑이다. 개발도 같다.
- 말에서 자동차로. 문법·디버깅에서 방향·판단으로 스킬 도메인이 옮겨졌다. 퇴화가 아니라 진화. 정점은 기계와 조작을 다 아는 F1 드라이버.
- 키를 안 잡아도 선장은 운전자다. 운전과 승객을 가르는 건 판단과 목적지지, 손이 키에 닿느냐가 아니다.
“AI가 발전하면 인간은 도태된다”는 서사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성급히 믿은 예측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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